인저리 타임 Injury Time

 

글은 미래를 선행한 과거의 인저리 타임[1] 꺼내 재구성한 같은 제목의 전시에 이어 붙인 것이다. 종료되지 않는 과거를 현재의 시공에서 결정하고, 이미 지난 무언가가 역전되는 상상을 하며.

 

 

‘인저리 타임’은 스포츠, 주로 축구 경기에서 선수의 부상(injury) 등으로 지연된 시간이 정규시간 이후에 더해지는 ‘추가시간’을 의미한다. 전시는 오늘 조각이 일종의 추가시간에 위치한다고 가정하며 그것이 어떤 부상을 축적, 극복하는지 또 어떻게 현재를 생성, 역전하는지 질문한다. 서구미술을 통해 새로움을 모색하고, 다시 그것의 토착화를 실험한 한국 근현대미술의 장면들은 오늘 작가들에게 회복 불가능한 부상으로 다가올까. 아니면 혼종성의 시간을 축적한 유의미한 성취로, 꽉 막힌 현재에서 돌파구를 찾는 가능성의 현시로 다가올까. 나혜석과 구메 게이치로, 구본웅과 사토미 가츠조, 권진규와 시미즈 다카시 작업에서 발견되는 친연성은 과연 치욕적인가. 김복진의 <여인의 입상>(1924)이 로댕의 <이브>(1881)를 본뜨고 최만린의 <이브>(1958)가 제르맨 리시에(Germaine Richier)의 작업을 참고했다고 하면, 이들이 두드린 조각의 근대적 돌파와 시대적 표상은 모두 무효가 되는 것일까.

 

《인저리 타임》은 특정 역사를 비집고 나온 물리적 실재로서 동시대 조각을 바라보고 이들이 과거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또 그로부터 어떤 어긋남을 생성하고 있는지 질문한다. 그렇게 오늘을 언젠가의 부상 혹은 엄살이 만들어 낸 혼종성과 양가성의 ‘추가시간’으로 정의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시공에서 발현되는 반전과 역전의 시도로 당대 조각을 제시해본다.

 

전시는 오늘 조각에서 목격되는 복제와 전유의 방법론을 출발지로 삼는다. 참여작가 강재원, 곽인탄, 오은, 이충현, 최태훈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과거의 조각을 경유해왔다. 이들은 지난 미술의 실험을 현재와 결부시키고, 익숙한 미술의 개념으로 제품과 작품의 경계를 가로지른다. 또 역사적 장면과 현재의 기술을 연동시키고 과거를 뒤섞어 새로운 조각의 형태와 구조, 질감을 탐구해왔다. 《인저리 타임》에서 이들은 자신의 작업을 일종의 역사로 마주한다. 그리고 그 역사로부터 다시 한번 거리를, 시차를 만들어 낸다. 자신의 이전 작업을 신체 삼아 그동안의 실험을 또 다른 지평에서 발견하고 더 멀리 밀어붙여보는 것이다. 과거를 참조하고 전유한 작가들의 작업은 전시에서 시간의 피상적 상징물이 아니라 부동의 현재-미술에 추동력을 가하는, 아직 끝나지 않은 시공의 연쇄를 그리는 근거로 존재한다.

 

전시에서 작가들은 과거 조각의 무엇을, 어디로 이접하고 있을까. 이들은 자신의 일부가 되는 과거를 반성적, 비판적으로 재고하며 당대 조각에 어떤 문제적 장면을 만들고 있을까. 강재원은 3D 프로그램으로 기본 입체도형을 구성, 변형하며 조각의 형상과 제작 방식의 미래를 당겨본다. 작가는 구체적인 개념과 형태를 설정하고 그에 맞게 작품을 제작하는 대신, 컴퓨터 프로그램 상에서 기본 값으로 주어진 형태를 왜곡하고(Skew), 비틀고(Twist), 구부리며(Bend), 하중을 가하는(Gravity) 등의 효과를 적용하여 전반적인 조각의 토대를 구성한다. 이번 전시에 포함된 <Exo2_crop>(2021)은 그렇게 구성된 과거의 작업을 크롭해 크기를 키우고 각도를 비튼 결과물이다. 다시 말해, 거울처럼 주변을 반사하는 거대한 풍선 조각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언제든 복제, 저장할 수 있는 형태를 삼차원의 공간에 출력한 결과인 것이다. 공기주입장치의 도움을 받는 얇은 막의 덩어리는 홀로 존재하지도 결코 유일하지도 않은 물질로 과거와 미래를, 평면과 디지털 세계를 오간다. 작업은 다시 3D 프린팅, 주물, 공기주입식 소재(inflatable) 등 여러 형태와 크기로 구현되며 동시대 조각이 삼차원의 물질, 볼륨, 질감에 품는 의혹을 팽창시킨다.

 

곽인탄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파편들을 모아 조각적 형태를 구성하는 시도로 자신의 작업을 설명한다. 강박을 마주하는 과정과 유비되는 작업은 목적지를 알 수 없는 이어달리기처럼 몇몇 형태와 질감을 중첩, 반복하는데 이는 작가가 미술사에 등장하는 회화, 조각의 도판 이미지를 참조해 나름의 형태와 구조, 질감으로 재구성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의 <동세 21-1>(2021)은 지난 개인전에 선보인 <강박의 통제 불가능성>(2020)과 <지옥문 위에 앉아있는 사람>(2020) 속 인물을 해방시켜 어딘가로 빠르게 이동시키는 상상에서 출발한다. 이번에도 작업을 위한 여러 레퍼런스들이 준비되지만 이전보다 자유롭게 촉각적인 질감에, 형태의 파괴와 구축에 몰입한다. 그리고 여러 미술을 참조했던 자신의 이전 작업 <Unique Forms-1>(2019), <Gate-1>(2019) 등을 등장시키며 레퍼런스의 외적 수용이 아닌 그것을 관통한 작업의 내적 필연성을 나타낸다. <동세 21-1>은 과거의 단순한 잔여물, 소비적 조립이 아닌 여전히 새로운 충돌과 이동을 열망하는 형태로 등장한다.

 

이충현은 지난 개인전에서 컴퓨터 프로그램 속 입체와 미니멀리즘 조각을 병치시키며 허구적 물질로서 전시와 조각을 경험하는 역설적 장면을 연출했다. 허구와 실제, 평면과 입체를 양분하지 않는, 하지만 분명한 낙차를 드러낸 작업은 이번 전시에서 야외 앞마당으로 그 무대를 이동시킨다. 컴퓨터 프로그램 상의 입방체를 정해진 규칙에 따라 기하학적으로 재구성한 듯한 <Trinity>(2021)는 흔히 볼 수 있는 미니멀리즘 조각을 단순 변형한 것으로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스크린 상의 평면-입체와 미니멀리즘의 병존이 아닌 보다 분명한 지각적, 경험적 물질의 생성을 추구한다. 스크린과 미니멀리즘의 정면성과 평면성은 실제 작업에서 사선과 반측면으로, 각기 다른 질감과 색감, 동세로 대체된다. 같은 조각 세 개를 다른 형태로 나란히 놓는 행위는 반복성과 연극성의 역사적 사례들을 호출하고, 이는 다시 작업이 포개 놓는 혹은 고의적으로 충돌시키는 복제 가능한 스크린과 광장, 소비적 장식품과 공공조형물에 대한 논의로 편입된다. 이 모든 것은 허위로서의 입체가 실제 공간에 침투, 교환, 경험될 때, 그리고 선행한 과정이 다시 역행할 때 분명해진다.

 

오은은 얼핏 단절된 것으로 여겨지는 한국 구상조각과 그것의 기념비성을 현재의 맥락에서 다시 헤아려본다. 그는 구상조각을 전승이나 역사화의 차원으로 접근하지 않고, 자기 주변의 상황을 압축적으로 결합시킨 연출 방식에 주목하며 주어진 상황, 재난, 부상을 극복하고 갱신하는 시도 자체를 기념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작가는 손흥민과 부상당한 신체의 형상을 현재의 한계를 이겨내는 몸짓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늘 그래왔듯 한국 미술의 몇몇 장면을 겹쳐 놓는다. 일례로 <마이너 인저리>(2021)라는 작품의 타이틀은 박이소의 ‘마이너 인저리’를 호명해내고 타자성과 소수자성, 대안성에 대한 논의를 오늘의 상황에서 환기시킨다. 또 <마이너 인저리>와 <라스트미닛골>(2021)에서 확인되는 불구의 짓눌리고 종속된, 또 파편화된 신체는 1980년대 (신)형상 조각, 특히 류인의 작업을 떠올리게 한다. 줄곧 이전 미술을 참조해 온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미술의 현재를, 아직 정리되지 않은 미술의 성취를, ‘극장골’ 같은 개인의 약진을 그려본다.

 

최태훈은 기성품과 조각의 기능, 위상을 뒤섞으며 그것에 함의된 사회 역사적 맥락을 문제 삼거나 무효화하는 조각을 만들어왔다. 2018년부터 진행된 세 번의 개인전을 통해 DIY 제품의 기본 유닛들을 자의적으로 재구성하는 일종의 해킹 조각을 선보였고, 최근 윤민화 기획자와의 2인전 《트랙터》(2020)에서는 규격화된 사물과 신체(마네킹) 간 발현되는 긴장과 에너지를 상연하는 조각을 연출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앞서 언급한 2인전과 2020년 개인전 《자소상》의 상이한 조형 방식을 하나의 작업으로 소환해낸다. DIY 가구 유닛들이 새로운 방식에 따라 수직 수평으로 연결되며 나름의 형태를 갖는 과정에 규격화된 사물에 긴장을 부여하는 신체와 스프레이 채색이 뒤섞이는 것이다. 대리석과 흙으로부터 생명을 끌어내던 조각은 마네킹으로 가뿐하게 대체되고, 전체 형태를 받치거나 연결하는 기성 오브제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오브제-마네킹의 다이내믹한 포즈는 영원불멸의 신체와는 거리가 먼 동시대 물질과 문화, 행위의 모방을 재확인시킨다.

 

《인저리 타임》은 일견 분리된 것으로 여겨지는 두 세계를 교차시키며, 과거와 연동하고 또 이산하는 매체로 오늘의 조각을 바라본다. 전시에서 작품은 어제와 오늘, 평면과 입체, 기억과 경험, 복제와 창작을 겹쳐 놓기도, 이 모든 것을 허술한 실존의 기념비처럼 제시하기도 한다. 공적이고 역사적이라기보다 언제든 복사와 붙여넣기, 크롭과 재구성이 가능한 사적이고 탈역사적인 조각은 스스로 상이함을 직조하며 다양한 조건과 심리가 혼재하는 상태를 만들어 낸다. 다섯 작가들이 시도하는 과거의 탐닉은 박제된 시간과 역사의 재연이 아니라 그것을 마주한 현재 자체를 체화하고 무대화한다. 과거의 사실을 종합하지도 기념비를 세우지도 않으며, 오늘에 편재하는 시차와 끊임없이 나타나는 갈등을 공개한다. 이들에게 과거는 이어달리기의 대상도 통제나 망각의 시공도 아닌 끊임없이 출현하는 어긋난 현재이다. 이번 전시에서 포착해야 할 부분 역시 이런 반작용과 운동성이 아닐까. 작업이 특정 대상, 시공으로부터 어떻게 어긋나고 있는지 그 위배의 움직임은 어디서 어떤 현재적 성좌를 구성하고 있는지 계속 발견해야 할 것이다. 전시가 말하는 추가시간은 시작도 끝도 없는 뫼비우스의 띠가 아니다. 그것은 어긋남을 생성해내는, 돌파의 구멍을 만들어내는 나선형의 시공이다.

 

기획/글 권혁규

 

 

[1] 위에 언급한 글은 『계간 시청각』 4호의 크리틱 섹션에 게재되었다. 권혁규, “인저리 타임”, 『계간 시청각』 (No. 4), 2020, pp. 8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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