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 Body, Come On! Yo!

 

 

《Every Body, Come On! Yo!》
류한솔 개인전
2023.05.11.-06.10.
기획, 글ㅣ허호정
설치ㅣ가가구죽
그래픽디자인ㅣ윤현학
도움ㅣ권기예, 김현주, 류미, 이선영, 이나하, 함연선
주최, 주관: 뮤지엄헤드
후원: 서울시, 서울문화재단

《Every Body, Come On! Yo!》
Ryu Hansol
2023.05.11.-06.10.
Curated by l Hur Hojeong
Technical Support l Studio Gagaguzook
Graphic Design l Ted Hyunhak Yoon
Thanks to Kwon Kiye, Kim Hyunju, Ryoo Mi, Lee Seon young, Lee Naha, Hahm Yeonsun
Hosted and Organized by Museumhead
Sponsored by Seoul City,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5분 남짓의 영상이 루핑된다. 일종의 영원성을 현시하는 무한 루프 안에서, 몸이 갈가리 찢겨 나간다. 하도 많이 먹어서 “터질 듯한” 배는 내동댕이쳐지다 터져버리고 장기는 흘러넘친다. 방향을 잘못 잡은 톱니는 손을 양 갈래로 갈라놓고, 갈라진 손과 팔은 절로 춤을 춘다(〈빠직빠직〉, 2011). 페트병 주둥이가 꽂힌 눈자위에서는 눈알이 폭 뽑히고 신경 다발이 늘어져 덜렁거린다(〈퐁퐁〉, 2014). 인물은 자기 몸에서 장기가 솟구치고 눈알이 튕겨 나와 바닥을 구르는 모습을 보고도 태연하다 못해 거기 가담한다. 그리고 쾌락의 절정을 향해 달리듯 몸의 분해를 가속한다. 그러면서 비명을 지르고, 비명을 지르도록 웃거나, 웃을 때까지 비명을 지른다!

 

류한솔의 ‘인체 분해-쇼’는 2011년 무렵 시작되어 영상, 퍼포먼스, 회화, 사진, 조각 등 다양한 매체를 가로질러 전개되었다. 작가는 인체를 각각의 개별성을 가진 부분들의 집합 또는 알 수 없는 이상한 세계들의 평행 운동으로 이해하며 그것을 형상화해 왔다. 《Every Body, Come On! Yo!》에서는 이들 작업을 한데 모아 선보인다. 침이 추적추적 흐르는 혀, 핏자국이 선명히 남은 뚫린 몸통과 부서진 머리 같은 것이 전시장을 메운다. 떼어낸 살은 짓이겨져 액체를 뿜어내고 국수 가락처럼 늘어나는 몸은 한계를 모르고 뻗어 공간을 방해한다. 이때, 흩어진 몸들 사이로 어딘지 모를 해방감이, 쾌감이, 웃음이 번진다. 왜일까? 이 수상한 웃음의 정체는 무엇일까?

 

류한솔이 눈, 코, 입, 사지, 장기가 원래 있어야 할 곳에서 떨어져 나와 제멋대로 존재하는 모양을 보여줄 때, 그것이 야기하는 이상한 쾌감은 익숙한 농담들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기다리다 지쳐 목이 빠진다.’, ‘피둥피둥 찐 살을 떼어낸다.’, 심지어 그걸 ‘다른 데 붙인다.’ 하는 말에서 몸은 자유자재로 탈착한다. 돌아가지 않는 머리와 뻐근한 눈알을 ‘뽑아서 헹군다’든지, 뻑뻑한 속을 비우려 ‘내장을 빨래하듯 씻어낸다’든지 하는 말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대개의 농담에서 우리는 그것을 실제로 일어나게 했을 때의 피, 타액, 비명(…)을 떠올리지 않는다. 농담은 선뜩한 사실을 상상의 구현 불가능 속에 숨겨두고 있다. 반면, 류한솔의 작업은 단순한 농담 같지가 않다. 그는 농담을 농담일 수 없게 하는 사실, 농담의 여분을 드러내 보인다. 짐짓 진짜인 양 재현된 인체 분해-쇼에서 작가는, 빠른 속도로 몸이 폭발해 선혈과 타액을 분출하는 것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이미지로) 터져 나오는 몸이 온전한 단일 개체, 직립한 신체가 아님은 물론이다. 대신,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고 무어라(어떤 부위라고) 지칭할 수도 없는 파편으로 툭툭 잘려 나간다.

 

여기서 몸은 의미를 맺지 못하는 물리적 덩어리가 된다. 의미가 부재한, 의미를 거부하는 몸은 문제적이다. 생의 긍정이든 제도와 구습을 향한 비판이든, 오랜 예술의 역사에서 몸은 (거의) 항상 ‘의미’를 운반했다. 누군가는 류한솔이 제시하는 몸을 보고도 비슷한 의미와 주제 의식, 해석의 계보를 발견할지 모른다. 가령, 크리스마스를 홀로 보내던 사람이 스스로 크리스마스트리가 되고(<크리크리 메리크리 스마스>, 2018), 자기 몸을 둘로 찢어 결혼식을 올린다는(<버진로드>, 2021) 플롯을 놓고, 사회적 관습과 배반에 관한 주석을 달 수도 있다. 그렇지만 기실 류한솔이 종이, 캔버스, 유토와 실리콘, 스크린에 가득 채워 넣은 사건은 단 하나, 인체 분해-쇼다. ‘몸을 반으로 나눠 나 혼자 연애하고 결혼한다’는 식의 농담은 낭자한 리얼리티를 통해 그 유효성을 잃어버렸고, 작가는 농담을 한 가지 설정값으로 매길 뿐 다른 데 전념한다.

 

〈Happy Birthday to Me〉(2023)에서도 마찬가지다. 설정된 배경은 제목이 가리키듯 ‘생일 파티’다. 그러나 영상의 시작부터 끝까지 생일을 둘러싼 다른 어떤 이야기도 전개되지 않는다. 영상은 우선 ASMR/먹방 콘텐츠에 자주 등장하는 ‘젤리 먹기’로 시작한다. 물컹한 젤리를 욱여넣고 씹는 입이 클로즈업되면서 고도의 시청각적 응집력이 발휘된다. 영상은 먹방을 한동안 모방하다가, 인물이 다급히 캑캑대며 목구멍에 걸린 젤리를 토해내려는 와중에 모드를 전환한다. 답답한 주인공은 구멍을 벌리고 벌려, 주머니 안팎을 까뒤집듯 자기 몸체를 뒤집는다. 상황은 자체로 카메라를 삼켜버린다. 뒤집힘의 운동에 삼켜진 카메라는 무한한 미로의 세계인 백룸[1]에 들어선다. 여기서 백룸을 빠져나오는 유일한 통로는 똥구멍이다. 마침내, 똥구멍 밖으로 퐁 하고 솟구치면서 카메라도 하늘을 향한다. 솟구친 것(방귀)은 천공에 문구를 새기는데, 거기에는 “HAPPY BIRTHDAY”가 적힌다. 누가, 무엇이 태어났던 것일까? 백룸을 나서 다시 세상을 보게 된 카메라-방귀가 자신의 귀환을 축하하는 걸까? 서사를 풀고 이해를 시도해 보지만 부질없다. 파티는 입에서 항문으로의 전환, 그 뒤집혀 버린 세계의 미스터리를 즐기라고 할 뿐이다.

 

류한솔의 ‘인체 분해-쇼’ 들은 별 뜻 없이 수상한 웃음을 자아낸다. 미하일 바흐친은 일찍이 이런 종류의 수상쩍은 웃음을 알고 있었다.[2] 바흐친에 따르면 어떤 웃음은 이중적이다. 이런 웃음을 자아내는 장르에서, ‘몸’은 자주 일그러지되 의도적인 슬랩스틱을 연출하지 않고, ‘사건’이 벌어지지만 미리 세워 둔 서사적 종점이 이를 가로막진 않는다. 의미를 지우려는 시도와 만들려는 시도가 함께 하고, 이미 존재하던 일체의 계열은 흐트러지며, 계열을 따라 서 있던 것들은 위치를 바꾼다. 류한솔 작업에서 서사는 있으면서 없고, 몸은 파괴되지만 죽지 않는다. 이야기는 텅 빈 농담 아닌 리얼리티를 통해, 의미를 잃은 리얼리티는 시청각적 과잉을 통해 끝없이 차오른다. 이중성의 긴장이 팽팽한 가운데, 몸을 가르는 핏빛 장면에도 불구하고 살 떨리는 공포 대신 웃음이 발생한다.

 

수상한 웃음은 작가가 자기 작업을 설명하면서 언급하는 ‘짤’, 그 생성 원리와도 연관하는 것으로 보인다. 웹을 항해하는 이미지들, 동시대의 모든 이미지는 손쉽게 짤의 운명에 처한다. (안 그래도 짧은) 콘텐츠를 다시 요약하고 밈(meme)화 하는 ‘짤’은 특정 콘텐츠에 포함된 내용과 맥락, 그를 뒷받침하는 사실성을 모두 휘발해 버린다. 오늘의 미술을 포함한 동시대 이미지는 (현실에 발 디딘 분명한 실존의 요청을 한쪽에 두고) 뿌리 없이 자가증식 하는 가상적 표피, ‘짤’로서 자기 존재를 긍정(해야)한다. ‘표피에는 이면이 있을까?’, ‘이면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완벽한 탈각, 나머지 없는 매끈한 분리 대신 침과 피를 흘리는 여분을 만드는 행위에는 이러한 질문이 동반한다. 그의 작업에서 몸/짤이 생성되는 과정이 낭자하게 구체화될 때, 오늘날 미술/이미지의 존재론적 상황이 다시금 환기된다. 류한솔은 동시대 이미지의 조건, 파편으로 부서지고 잉여로 넘쳐나는 짤의 운명을 시험해왔던 것이다. 말하자면, 류한솔은 ‘짤’을 통해 ‘짤’로서 살아나는 몸을 모색하고, 그와 동시에 과거(이면의 흔적)와 미래(무한한 분열)를 함께 현실화한다.

 

《Every Body, Come On! Yo!》는 그렇게 흩어진 몸-이미지들을 불러 모아 질펀한 파티를 연다. 가상이 실제에 틈입하고 실제가 가상에 겹치는 초-접속의 시대에, 이름 붙일 수 없으며 소유나 소속을 밝힐 수도 없는 채로 피를 흘리는 몸, 그 이미지 덩어리들의 생을 축하하며!

 

기획, 글 허호정

 

 

[1] 백룸(backrooms): ‘불안하게 만드는 이미지’를 요청하는 웹 게시판에서 유래했으며, 한 익명 사용자가 업로드한 사진에 이야기가 덧붙으며 콘텐츠로 확산되었다. 백룸은 “무작위로 생성된 방들이 끝없이 나열된 미로로 묘사”되며, “젖은 카펫 냄새, 노란 단색의 벽, 깜빡이는 형광등’이 특징적인 공간이다. 열린 공간 뒤로 미지의 공간이 숨어 있다는 설정에 음모론적 색채가 더해져 백룸 서사는 도시 괴담의 일부를 이루기도 한다. 또, 비디오 게임, 유튜브 영상 외 각종 픽션으로 생산, 소비되면서 다양한 ‘레벨’, 거기 거주하는 존재를 가리키는 ‘엔티티(entity)’ 등 확장된 요소들을 포함하게 되었다.

[2] 바흐친의 ‘웃음’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고. 미하일 바흐친, “서론: 문제의 제기”, 이덕형, 최건영 옮김,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학』(아카넷, 2001), 19-104.

 

 

Downlo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