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Z


《S/Z》

by DadBoyClub
2023.10.17 – 11.18
12-7pm (Closed Sun/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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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dBoyClub is a project by Sangmin Lee & Sun Woo 이상민, 한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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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ated by Hojeong Hur 허호정
organized and hosted by Museumhead 뮤지엄헤드
sponsored by Seoul City,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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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YNR Visuals / sound Salamanda / text 김예솔비, 박정연 / ceramics 양홍조/ soap 강미미 / sculptrue modeling Feng Fei, 허밋크랩/ foam machine 안준휘 / installation 조재홍 / admin 김보경

closing performance 11.18 (Sat) Seb Choe 최셉 (Sebseonbi 쎕선비)

performance managing Hyemin Do 도혜민

 

* 해당 기간 뮤지엄헤드의 전시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 하에 한국 차세대 작가 프로모션 전시 지원 프로그램(《더비 매치: 감시자와 스파이》 2부)의 일환으로 진행됩니다.

 

 

《S/Z》

 

대드보이클럽(이상민, 한선우) 개인전 《S/Z》는 어떤 이야기를 제시하고 반복하고 오독하며 그 안에서 여자(의 욕망)들을 보여준다.[1] 대드보이클럽은 이미 쓰인 것(déjà écrit), 진부할 정도로 반복되고 굳어진 이야기에서 출발해 또 다른 이야기를 시도해 왔다. 이때, 여자는 항상 이미 쓰인 이야기로서 과거와 현재의 ‘여성’들과 ‘여자들’을 불러오며, 그것을 감내하고 되풀이하고 또 부정하고 싫어하는 그 자체 이야기-신체다. 대드보이클럽에게 그러한 이야기는 언어를 질료 삼는 텍스트에 국한하지 않고, 거품처럼 출렁이는 감정들, 이미지들, 구체적이면서도 애매한 경험들을 포함한다. 전시는 이야기를 가져다 놓고, 언제나 오염된 상태이며 또 다른 오염을 야기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 또는 여자를 – 표백하려는 몇몇 시도를 동반한다.

 

이야기로서의 전시 《S/Z》에서, “S/Z”는 전시 제목이면서, ‘다시 쓰기’의 놀이 대상인 원전 텍스트이고, 이것을 분해한 또 다른 텍스트를 가리킨다. 우선, 그 참조의 대상을 살펴보자. 하나는,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의 소설 『사라진 Sarrasine』(1830)이다. 『사라진』은 시기와 질투, 거짓과 모함이 난무하는 19세기 프랑스의 살롱을 배경으로 한다. 화자는 어떤 가문의 연회장에서 유령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인물에 대해 길게 묘사한다. 그리고 이 인물의 미스터리를 밝히며, 액자 안쪽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사라진(Sarrasine)은 촉망받는 신예 조각가다. 그는 어느 날 오페라 무대에서 자신의 영원한 숙제였던 미의 표상, 한 ‘여인’, 잠비넬라(Zambinella)를 마주한다. 첫눈에 반하여 순간의 희열에 사로잡힌 사라진은 제멋대로 잠비넬라의 초상을 빚어낸다(‘“그녀”는 연약하고 순결하며, 부드러운 곡선을 가졌고 보호본능을 자극한다’). 그리고 그 초상을 향해 끈질기게 구애한다. 안타깝게도 진실은 모든 것이 그의 환상이었을 뿐임을 알린다. 잠비넬라는 사라진의 ‘여인’이 아닌 카스트라토(castrato)[2] 가수였던 것이다. 사라진은 자신이 멋대로 꾸며낸 상(像)의 허무함을 깨닫고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된다. 감정에 북받쳐 사라진은 잠비넬라를 살해하려 하지만, 도리어 오페라 가수의 추종자들에 의해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다.

 

두 번째 텍스트는 롤랑 바르트의 『S/Z』(1970)다. 바르트는 발자크의 동일한 텍스트를 가져와 꼼꼼하게 주석을 달았다. 그는 소설 속 화자와 소설가(발자크)의 욕망, S로 표시한 사라진과 Z로 표시한 잠비넬라, 그리고 둘의 입으로 말해진 언어와 서사 속 공간과 분위기, 진실과 수수께끼를 분석한다. 그 끝에 바르트는 S와 Z의 경계에 횡선을 배치했다. 흥미롭게도 바르트는 어느 주석에서, Z를 두고 “대문자 여자”라는 말을 썼다. 내가 이해하기로 대문자 여자는, 이 세상의 상징 질서가 요구하는 ‘여성’의 (도덕적 자질, 외모, 성애적 매력 등 모든 면에서) 완벽한 이상인 동시에 같은 이유로 그러한 상징성과 상징의 작동인으로서 남근적 질서의 허상을 폭로한다. 바르트는 이를 다시 “거세시키는 여자”라고 썼다.

 

다시, 전시장으로 돌아와 대드보이클럽의 신작 영상 〈S/Z〉(2023)를 보자. 〈S/Z〉는 대드보이클럽의 네트워크를 배경으로 한다. 이 네트워크에서 S와 Z는 팝업창으로 등장해 서로에게 말을 건다. 성별이 특정되지 않은 둘은 암시적으로만 위치 지어지고(그러나 S는 Z를 두고 “오로지 여성만이 그토록 순결한 향기를 가질 수 있고, 그 순결함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조각가인 자신의 안목뿐이라고”라고 말한다), 사운드와 이미지는 S와 Z 각각에 대한 독자/관객의 추적을 돕거나 방해한다. S는 자신이 찾던 이상이 Z임을 강력하게 믿기에 Z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다가간다. 하지만 Z는 S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뿐 아니라 숨겨둔 무기로 S를 죽여 S를 네크워크에서 사라지게 만든다.

 

이야기는 반복된다. 하지만 대드보이클럽의 이야기에서 『사라진』 식 반전 — ‘(Z가) 사실은 남자였어’ — 은 일어나지 않는다. (반전은 이미 반복에 의해 지루해진다.) 그보다는 “대문자 여자” Z가 (대문자인 이상, Z가 생물학적으로 여자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S와 만나며 겪는 갈등 상황이 강조된다. S는 원전에서와 유사하게도 자신의 환상에 갇힌 고전적 예술가로 그려진다. 그는 자기 환상 속 무언가를 찾는 데 매진한다. 그렇다면 Z는 어떤가. 대드보이클럽의 이야기에서 Z는 스스로 밝히길, 네트워크를 언제나 깨끗한 상태로 유지하는 청소부다. 아니, 청소부로 위장한 무기 상인이다. 그의 무기 ‘비누’는 일체의 혐오 발언과 데이터를 거두어 삭제하는 도구, 어떤 페미니즘이 탑재된 고기능 거름망 소프트웨어다.

 

한편, ‘비누’는 깨끗함/순결을 여성적 가치로 상정해 온 긴 역사를 상기시키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S는 ‘비누’로 표상되는 Z에게 ‘꽃, 향기, 순결’의 이미지를 씌우고 찬사를 전한다. 이에 Z는 자신의 표백 의지가 S가 그리는 순수성과 맞닿는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하게 되며, S가 선사하는 유혹의 수사 앞에서 그 내포된 억압과 거기에 매료되는 굴절된 욕망을 한꺼번에 느낀다. 전시 《S/Z》에서 ‘비누’라는 모티프는 Z(또는 대문자 여자)가 순응적 수동성과 공격적 능동성 사이에서 진동하는 존재임을 시사한다. Z는 S를 뿌리치고(없애고) 난 뒤에도 계속해서 S가 회귀할 것을, 혹은 S’, S’’, S’’’로 복제될 뿐인 타자의 욕망에 종속될 것을 예감한다. 대드보이클럽의 네트워크는 삭제가 가능한 무결의 공간을 상정하지만, 그러한 유토피아적 전제가 불가능함을 인지하는 에이전트, Z가 매개하는 모순적 생태계다.

 

전시장 한 공간에는 거품이 넘쳐 흐르는 조각들이 있다. 물리적으로 부피를 차지하는 조각은 영상 속 서사와 모티프를 실제로 구체화하는 기능을 하면서, 그 중에서도 Z를 형상화한다. 포획하고 세척하는 인물 Z는 조각된 비누와 파리지옥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정작 비누는 부조로 조각돼 벽에 단단히 붙어 있어 무언가를 씻겨내지 못하고, 그 자신이 녹아 사라지는(이것 역시 비누의 기능이긴 하다) 무용함을 강조한다. 파리지옥 역시 ‘벌레’를 잡아먹는 본래 성질을 잃고, 고전적 여인상의 품에 안겨 의욕 없이 놓여 있다. 영상의 마지막 시퀀스와 상응하는 이 조각들은 Z의 운명을 그려 보인다. 여기서 조각의 조형논리는 부분들을 복제하고 덧붙여 완성하는 것으로, 거대한 대문자 상을 충족시켜 나가며 상징 질서의 메커니즘을 재현하는 것으로 밝혀진다.

 

“여자라는 것은, 어김없이, 다른 누군가가 원하는 대로 된다는 것이다. 저 깊은 곳에서는, 누구나 계집애 같다.”[3] 대드보이클럽은 타자의 욕망과 자신의 욕망 사이에서 길항하는 ‘여자 됨’에 집중한다. 그리고 오래된 질서를 거부하고 벗어나려는 일종의 ‘지성적인’ 과업을 수행하는 가운데 욕망의 양가적인 운동을 ‘이야기하기’로 선보인다. 오래된 이야기로서 여자는, 수컷을 잡아먹는 암컷 곤충이나 삽입된 남성기를 결코 놓아주지 않는 절단기로서의 여성기에 관한 이야기처럼 죽거나 죽이는 치명적 교섭의 장에 스스로를 노출시킨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다시 육체를 통과해, 긴 종이 뭉치를 뽑아내는 질(Carolee Schneemann, 〈Interior-Scroll〉(1975))이나, 음식 대신 책을 먹고 자라 단단히 야윈 몸(Adrian Piper, 〈Food for the Spirit〉(1971))처럼 타자가 아닌 스스로의 욕망을 낳으려 한다. 이야기는 지루하게도 되풀이되지만, 이전과 완벽히 같지는 않은 무언가를 재생한다.

허호정

 

[1] 가상의 상점으로 꾸려진 이전 작업에서 대드보이클럽은 신화나 전설, 고전, 일상적인 수다를 아우르는 이야기들을 차용해 장식적 오브제들(사실은 무기인 것)을 개발했다. 일례로, 〈위장꽃〉은 뾰족한 미늘창을 꽃잎 아래 숨기고 있다가 불법촬영카메라와 같이 곳곳에 심긴 렌즈를 향해 창을 발사하고, 〈프시케의 시계〉는 복종과 순응의 역할에 반발하여 강제된 로맨스의 시간을 폭파시킨다.

[2] 16세기 중엽부터 18세기 말까지 있었던 것으로 전하는 거세된 남자 가수(male singer)로, 전통 악극에서 소프라노, 메조 소프라노, 콘트랄토의 높은 음역대를 맡기 위해 변성기가 시작되기 전인 미성년에 거세를 한다. 종교적 이유 또는 여성이 무대에 오르지 못했던 사회적 이유 등으로 등장한 것으로 전한다. 거세를 뜻하는 ‘castration’과 어원을 공유한다.

[3] 안드레아 롱 추(박종주 옮김), 『피메일스』(서울: 위즈덤하우스), 2020. 111.